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꿇고 있던 무릎을 펴고 일어나, 뒤를 돌아서 발을 내딛고 앞으로 걸어간다.
평소와는 달리, 강화 외골격을 이용한 걸음이 아닌 스스로의 발을 이용하여 걸어간다.
리셋의 금속판 바닥은 얼음장처럼 차가워, 그 냉기가 의복을 뚫어오듯 느껴져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이내 적응하고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덤덤하게 걸음을 이어간다.
오비터로 내려가는 발판 옆의 음성 수신기는 항상 그렇듯이 그리니어들의 대화를 감청하고 있다. 의미 없이 감청기를 껏다 키는 것을 반복하다가 고개를 돌린다.
오비터의 아래층에 도달했을 때 눈동자 속에 들어온 것은 너무나 익숙한 광경임이 틀림없었으나, 워프레임의 영상 전환으로 인한 광경이 아닌 나 자신의 눈을 통해 보는 이 모습은 너무나 신기하게 다가왔다. 인큐베이터 속에서 커다란 발톱을 움츠리며 자고 있는 쿠브로, 교란 임무를 마치고 가져온 설계도를 토대로 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게끔 자동 제작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주조소는 기계 팔을 분주하게 움직이며 자리를 비웠던 동안 착실히 내부를 채워나가 ‘무언가’의 외곽 코팅만을 끝내면 될 정도로 분주하게 작동되고 있었다. 필시 오디스가 정교하게 프로그램을 설정한 것이 틀림없다.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의구심이 섬광처럼 나의 뇌리를 스쳐갔다. 갑작스럽게 열린 덮개를 통해 들어온 강렬한 불빛으로 인해 늦잠을 자던 아이의 방에 쳐져있는 커튼을 걷어내자 놀란 듯이 두 팔로 얼굴을 가리고 일어나는 아이처럼, 동면장치 속에서 잠을 청하다가 아무것도 모른 채 몸 가누기도 힘들어 보이는 약한 다리를 일으킨 순간부터, 의구심을 되새길 때의 충격에 휩싸여 누워있던 짐승이 재해의 때를 감지하듯 신경을 곤두세운 채 아래층을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한 때까지, 평소라면 같은 농담을 하며 자신을 부르던 오디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로터스의 애칭으로 불리고 있는 검은 복식의 오퍼레이터, ‘레이븐’ 은 평소와는 다른 공기에 어금니를 드러내며 경계하고 있는 쿠브로의 시야에 들어오는, 자신의 방에 들어오기 전 대칭으로 만들어진,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두 개의 방 중에서 오른쪽의 통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방에서 여덟 걸음 쯤 떨어진 곳에 멈춰 섰을 때, 그의 주홍빛 눈동자에 비추어진 광경은 버려진 오로킨 함선 안에서 생명체를 향해 좌우로 끄덕임만을 반복하고 있던 인페스티드 포자에 둘러싸인 방문과 조금 비틀려 열려진 틈새 사이에서 비집어나온 찬란한 자태를 자랑하던 백은의 줄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뒤틀려 짐승의 털빛을 내고 있었다.
떨리는 손길과 당혹스러운 감정을 감추기 위해 진정을 취하려는 순간에도 줄기는 천천히 자라나며 문을 휘감고 있었고, 그로 인해 미세하게 더 벌어진 틈새 속에서는 굉장히 익숙하면서도 오금을 저리게 하는 잡음 섞인 뒤틀린 전자음이 이름 모를 유기물질이 꿈틀거리는 소리와 함께 공기에 뒤섞여 귓가에 맴돌았다.
“오퍼레이터? 오디스는 궁금합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