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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나는 문과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고, 오른쪽으로 걸어간다는 선택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문에 다다를 수 있게 해주었다. 합금 위에 금빛을 낼 것만 같이 아름답게 휘어진 선형 문자가 음각된 문을 천천히 더듬으며 수동개폐 장치를 찾으려다,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 무언가 위화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비터 안에는 오로킨 문자가 새겨진 곳이 없기 때문에…. 있을 리 없는 문자의 존재는 나를 호기심 속으로 밀어 넣었고, 이 문자를 해석할 수 있기에 시작점으로 추정되는 문자의 왼쪽 윗부분부터 만져보며 해석하기 시작했다.

열기 위해 더듬을 때는 몰랐으나, 정확하게 새겨져 있지만, 보통의 문자와는 달리 얕은 흉터처럼 긁혀나간 듯 미치광이가 급히 새기는 모습이 떠오를 정도의 투박한 모습이 손가락 끝으로 전해졌다. 무딘 톱날처럼 거친 선들을 훑으며 해석한 ‘무덤’을 얕게 읊조림과 동시에 갑작스레 방 안에서 여러 형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겁고 투박한 남성의 비명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뒤틀리고 잡음이 섞인 듯한 목소리들은 마치 나의 목을 죄면서 소리치듯 귓가에 맴돌았다.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낚아챌 듯만 같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황급히 개폐 장치를 부서뜨릴 것처럼 조작하기 시작했다. 마치 이를 기다렸다는 듯, 웅덩이가 철벅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꿈틀거리듯 자잘한 액체소리를 내며 나를 향해 다가오는 듯이 움직이는 무언가의 발소리는 고막을 두들기는 심장 소리와 함께 커져만 갔다. 떨리는 손으로 개폐 장치를 내린 후 혼란 속에서 다급하게 문을 열어 그곳에서 빠져나온 뒤, 서둘러서 반대편의 개폐 장치를 조작해 문을 닫았다.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문에 등을 기댄 채, 터질 것만 같은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가쁜 숨을 내뱉는다. 문에 조심스럽게 귀를 가져다 댔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닥을 삼킬 듯이 딛는 발소리는커녕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정적만이 귀에 담겨올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공포감에 들려온 환청에 두려움이 배가 되어, 겁먹은 채 개폐 장치를 조작하려다 발작적으로 내디딘 발에 잠긴 웅덩이 소리를 존재하지도 않는 괴물의 발소리라고 지레짐작하여 자신을 질겁시킨 모습을 나만의 비밀로 간직하기로 했다.
 
바깥이 보이는 창문이 있는 위쪽과 연결된 통로에 있는 탓인지, 손의 윤곽이 흐릿하지만,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통로에는 어디에선가 새어 나오는 붉은빛으로 가득했다. 감염체 표본을 보관하는 진열대 조명처럼 희미한 정도였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에 비할 바가 되지 않았다. 이제는 적어도 발밑이 보이지 않아 넘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망치 따위로 합판을 강타하는 듯한 소리와 충격이 등을 통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뒤쪽에서 연이어 들려오는 굉음과 함께 서서히 찌그러져 가는 문이 나의 등을 세차게 밀어냈다. 바닥에 강하게 부딪힌 아래팔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는 동안에도 무심히 비틀리는 문 때문에 리셋 자체가 흔들리는 듯했다. 착각이 아니었다고 당황할 틈도 없이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에 반사적으로 어스름한 붉은빛이 새어 나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들었을 때, 나의 눈동자 속에 담긴 광경은 나의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억지로 비집어서 뜯어내듯, 회갈색의 줄기에 의해 우그러지고 역한 냄새를 풍겨대는 역겨운 포자에 뒤덮인 방문은 더 열 수 없을 정도로 과하게 어긋난 채 벌어져 있었고, 예전에 그저 기분 나쁜 꿈이라고 생각을 하며 떨쳐내려고 했던 이 광경은 나를 질겁하게 만들었다. 마치 저번의 악몽이 이어지는 듯이… 맞물려있던 곳에 생겨난 커다란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붉은빛은 악몽의 끝에서 끔찍한 모습을 한 채 나를 반기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고, 공포감에 뒤섞인 혼란은 거미줄 치듯 서서히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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