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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하게 흔들리던 불빛은 비로부터 가려지던 벽의 아래에 붙어있는, 내 허리 높이의 작은 제단 위에 수많은 촛불과 그에 둘러싸인 채 이쪽을 향해 입을 벌리듯 반달 모양으로 겉껍질이 반쯤 파인 엔도 크기의 호박 속에서 타오르는, 중지 손가락 크기의 지름을 가진 촛불이 내는 것이었다. 특이하게도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촛불들은 마치 타오르는 모닥불처럼 강하게 느껴졌고, 비에 젖어 축축한 옷을 말리기 위해 몸을 숙여 호박등을 양팔로 감쌌다. 그와 동시에 옆에서 작게 빛나던 불빛들이 갑자기 모두 꺼졌고, 어느새 하늘은 먹구름에 가려져 별빛조차 보이지 않게 되어 품속의 등불에만 의존해야 했다.

 

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벽돌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 양손 사이에 눕혀진 채 끝쪽이 약간 깨진 벽돌이 제단 위쪽의 벽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떨어진 위치를 찾아내기 위해 벽을 훑어봤고, 머리보다 약간 위쪽에서 직사각형의 텅 빈 구멍을 발견했다. 호박등을 들어 빛을 비추려고 양손으로 약간 들어 올리면서 구멍 쪽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 검은 무언가가 그 속에서 이쪽으로 삐져나와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진홍빛으로 빛나는 벽돌들 사이의 구멍에서 새까만 털이 미세하게 할랑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기 위해 등불을 구멍을 향해 올렸고, 털에 불빛이 비쳐 주황색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짐승의 털인가 하고 좀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얼굴을 들이밀려는 순간 털 뭉치가 구멍 속에서 회전하여 이쪽을 바라봤다. 날카로운 얼굴을 한 검은 고양이는 불빛 때문인지 일자로 쭉 찢어진 눈을 한 채 이곳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약간 주춤하며 뒷걸음쳤고, 잠깐 움츠리듯 눈을 세게 감았다.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아 아주 약간 고개를 들고 눈을 떴을 때, 고양이는 떨어지지 않은 벽돌 위에 두 발을 올리고 이쪽을 향해 고개를 내린 채 쳐다보고 있는 듯했다.오직 불빛에 비친 윤곽으로만 얼굴의 형태를 알 수 있었다. 발판을 딛고 일어서있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날카롭게 빛나던 눈이 있던 곳에는 그의 털빛처럼 검은, 동굴처럼 뚫려있는 구멍만이 주홍빛 테두리를 두른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합금판에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뒤로 나자빠졌다. 고양이가 나를 향해 갑자기 달려들어서가 아니라, 그저 겁먹은 채 뒷걸음질하다 바닥에서 튀어나온 벽돌에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 가볍지만 커다란 뼈대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 넘어지면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왼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왼팔과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었고, 그 결과 팔과 손바닥이 약간 저리지만, 꼬리뼈가 조각나는 상황은 면했으니, 어디의 뼈가 부러지면서 난 소리는 아니었다. 오른쪽 새끼손가락에 무언가가 닿았다. 시선을 좀 더 옆으로 옮기니, 기울어진 채 고인 핏물에 하얀 촛농을 흘리고 있는 촛불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깨진 호박 조각들이 사방으로 늘비했다. 유일한 등불이 깨진 것에 안타까워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촛불을 들고 자리를 옮길 마음도 들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다시 오비터 아래에서 엎어져 있었고, 익숙한 붉은빛이 주변을 물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따라 엎어져 있는 그림자 속에는 나를 노려보던 고양이의 눈처럼 뚫려있는 구멍과 그 너머에는 뒤틀린 채 떨어져 나간 문이 묻혀있었다. 암흑뿐이었던 방은 소매틱 링크에 연결되어있는 줄기에서 나오는 빛에 의해 붉게 물들어있었다. 줄기들은 마치 작은 호수처럼 바닥에 고여 있던 핏물들을 빨아먹고 양분으로 삼은 것 마냥 소름 끼치는 붉은빛을 띤 채 발광하고 있었고, 살아 움직이는 듯 꿈틀거리는 모습은 더는 줄기가 아니라 뭉친 혈관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토록 돌아오고 싶었던 공간은 고문실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나를 섬찟하게 했지만, 악몽에서 깨어나고 싶은 마음에 다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기로 했다. 꿈속에서 꿈을 꾸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잠깐 안정을 취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건 도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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